[2025.05.14] 제16차 독서위원회 회의 결과 _ 어린이라는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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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1] 무서움을 없애는 나만의 방법😱 [안건 2] 나의 멋진 __살⌛
[안건 3]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린 경험💦
[안건 4] 미래를 먼저 엿보고 왔습니다📢
[안건 5] 어른이 된 후 달라진 것들✨
[안건 6] 나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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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지만 어느새 그 세계를 잊고 살아갑니다. 어린이는 미래의 어른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완전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과연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해 본 적 있을까요? 저자 김소영은 조용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묻습니다. 당신은 ‘어린이라는 세계’를 한 번이라도 온전히 바라본 적 있냐고.
_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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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속담 만들기를 할 때는 “읽지도 않을 책은 사지도 마라 –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썼다. 내게 한 말은 아니지만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저도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책 곳곳에서 어린이들의 ‘어른스러움’을 마주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들에게 ‘어른스럽다’고 하는 표현조차 맞는 것인가. 어른이 되어가며 겉으로 보이는 세계는 넓어질지언정, 내면의 세계는 점점 더 작아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한하고 경이로운 어린이의 세계. 그저 놀랍고도 놀라운 ‘어린이스러운’ 세계를 만난 것 같습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그 생각이, 그 마음이 작은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어른보다 크기도, 깊기도 해요. 그 사실을, 저 또한 종종 잊고 사는 ‘어떤 어른’ 중 하나입니다. 더는 어린이들에게 한순간도 무례하지 않을 수 있는 어른이 되도록 끊임없이 기억하겠습니다.
_늉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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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1] 전 지금도 무서운 게 많은 어른이지만, 어렸을 땐 더했어요. 어두컴컴한 밤, 귀신, 공포 영화 등 무서운 게 엄청 많았답니다. 안 무서운 걸 꼽는 게 더 빠를 정도였죠. 여러분도 어렸을 때 무언가를 무서워했나요? 무서움을 해소하기 위해 했던 여러분만의 방법이 궁금해요.
📋 근거조항
48~49P. 괴담류도 나를 괴롭히는 것 중 하나였다. 친구들이 “무서운 얘기 해 줄까?” 하면 나는 손으로 귀를 닫았다 열었다 하고 “아아아” 소리를 내면서 기를 쓰고 피했다. (···) 귀신이 나오는 <전설의 고향>은 말할 것도 없고, 범죄 수사물인 <수사 반장>도 못 봤다. 가족들이 그런 TV 프로그램을 볼 때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공포 영화는 지금도 못 본다. 추리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도 몇 년 되지 않았다. 여전히 겁이 많지만,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안도가 된다. 겁쟁이가 잘도 커서 어른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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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세상에 귀신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세상이 이렇게나 넓은데 인간 외 다른 신령스러운(?) 존재가 있다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어렸을 땐, 귀신을 아주 정말 몹시 매우 무척 엄청 되게 많이 무서워했어요. (사실 지금도요.) 그래서 열두 살 정도까지 부모님과 한 방에서 잤던 것 같아요. 깜깜한 방 안에 나 홀로 남아 있으면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부모님과 함께 잘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무서움을 무릅쓰고 혼자 자기 시작하면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귀신이 나타나더라도 내 머리카락을 한 올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이불로 꽁꽁 싸매고 잤어요. 산소가 부족해서 숨을 쉬기 힘들어도, 절대 이불 밖으로 제 신체의 일부를 드러내지 않았답니다. (물론 잠들기 전까지만요.) 이불이 나를 귀신으로부터 보호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니. 참 순진했네요, 저.
_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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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저는 정말 겁이 없었습니다. 너무 겁이 없어, 또래 아이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었죠.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중간/기말고사를 치르고 나면 한동안은 수업을 하지 않고 영화를 보여주곤 했었는데요. 당시 너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던 저는 아버지를 졸라 dvd 하나를 학교로 가지고 갔습니다. 돌아보니 아버지도 무슨 생각으로 그걸 저한테 건네주셨는지 모르겠어요.
dvd에 담긴 건 ‘착신아리’라는 영화였는데요. 일부 즐기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눈이며 귀며 다 틀어막고 있다가 영화가 끝날 때쯤 눈알이 빠지도록 저를 노려보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 끝났다면 다행이었겠지만, 그 영화를 본 이후 ‘착신아리 벨소리’에 빠져버린 저는, 제 핸드폰 벨소리를 바꿨어요.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깜깜한 길거리에서 울리는 착신아리 벨소리란… 친구들의 원성에도 뭐랄까, 그때는 그냥 무섭지도 않고, 친구들의 반응도 재미있었어요. 무서워서 혼자 집에 못 가겠다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집에 데려다주면서까지 한동안 그 벨소리를 유지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무척 악취미였네요.
그렇게 친구들을 괴롭혔던 탓일까요? 이제 와 벌을 받나 봅니다. 겁 없던 그때의 늉늉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무서운 영화를 보는 날엔 혼자 잠들기도 무서워하는 겁 많은 쫄보 늉늉이 되었습니다.
+ 아, 극복 방법이요? 있다면, 쫄보 늉늉이 아니겠죠…? 좋은 방법이 있다면, 제게도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_늉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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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2] 우리도 우리의 멋진 __살 모습을 상상해볼까요? 두 살, 열두 살, 스물두 살, 마흔두 살, 일흔두 살의 모습을 떠올려봐요!
📋 근거조항
80P. 『멋진 열두 살』을 읽고 열두 살 어린이들과 '멋진 __살' 표를 만들어 봤다. 두 살, 열두 살, 스물두 살, 마흔두 살, 여든두 살 각각의 멋진 점을 쓰면서 성장에 대한 기대를 가져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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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의 슬슬
먹고 자고 싸고, 먹고 자고 싸고. 본능에 충실한 생활만 해도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멋진 어린이. 조금 있으면 서른두 살이 될 슬슬은 두 살의 슬슬이 그저 부럽습니다.
열두 살의 슬슬
음악에 재능이 있진 않았지만,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유일무이한 교회 반주자로 우뚝 선 대단한 어린이. 사실 제 공은 별로 없고요. 딸을 교회 반주자로 만들겠다는 아빠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덕분에 저는 지금도 4부 악보를 곧잘 봐요. 요즘은 피아노를 안 친지 꽤 되어서 손이 굳었지만, 그래도 몸으로 배운 건 안 잊어버리더라고요. 피아노 연주가 취미라고 할 정도는 됩니다.
스물두 살의 슬슬
최저시급이 5,580원에서 6,030원으로 올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뻐했던 어른이. 그때의 슬슬은 돈을 버는 족족 쓰지 않고 저축을 했어요. 그때 습관을 잘 들인 덕분일까요? 전 지금도 돈을 곧잘 모읍니다.
마흔두 살의 슬슬
연희동, 마당이 있는 단정한 집에서 남편과 둘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방은 네 칸이에요. 뜨개실과 책으로 가득한 저의 취미방, 레고, 피규어,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한 (미래) 남편의 취미방, 침실, 그리고 옷방. 마흔두 살의 저는 이렇게 멋진 집에서 살고 있을 거예요.
일흔두 살의 슬슬
수십 년 간 현대무용, 발레, 요가를 하면서 체력을 길렀습니다. 다리 힘도 키웠고요. 20대도 너끈하게 이길 수 있는 체력으로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멋진 할머니입니다.
_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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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의 아빠 / 두 살의 슬슬. 눈이 똘망똘망하니 참 예뻤습니다. 예쁨 많이 받을만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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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의 늉늉
친오빠에게 발로 차이면서도 잘 울지 않게 된 어린이. 발로 찰 거면 예뻐하지나 말던지. 더러운 성질머리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 조금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렇게 자란 덕에 어디 가서 잘 지지 않는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두 살의 늉늉
탐구심이 강했던 어린이.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던 건지, 방과 후에 동네 산을 자주 오르곤 했어요. 연락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가 한참만에 나타나서는 쑥을 캐왔다고 자랑해 엄마, 아빠의 속을 뒤집곤 했지만, 그때의 탐구심과 자립심이 늉늉의 미래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스물두 살의 늉늉
당최 멋진 점을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망나니로 산 세월이지만(feat. 알코올), 나름 쉼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러 동아리 생활을 하며 사회성을 키워나갔습니다. …네, 포장 실패요.
마흔두 살의 늉늉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 올린 ‘어엿한’ 사회인 늉늉입니다. 따르는 후배도 여럿, 책임져야 할 업무도 꽤나 많아졌네요. 빛나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이란 이런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마인드는 여전히 늙지 않았다는 것. 트렌드를 쫓고,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끝없이 하는 멋진 사회인, 멋진 선배가 되었습니다.
일흔두 살의 늉늉
그간 쌓아왔던 커리어를 발판 삼아, 나 자신의 브랜딩에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시니어 모델이 되었어요. 옷을 잘 입는 건 아니고요, 그저 저의 생활을 보여줄 뿐이에요. 근데 뭐 다들 좋아하네요. 이해할 수 없지만 좋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앞으로 좀 더 멋진 시니어 생활을 즐겨야겠습니다.
_늉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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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늉늉의 아빠 / 예뻐할 땐 또 확실하게 예뻐했습니다. (오빠 미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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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3]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나요?
📋 근거조항
172P. 그 뒤로도 당연히 여러 물건을 잃어버리며 살았다. 지갑, 우산, 스카프 같은 것들. 어렸을 때 잃어버린 동전 지갑과 목도리만큼은 아니어도 어떤 것은 떠올릴 때마다 속이 상한다. 생각해 보면 좋아했던 만큼 자주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잃어버리기도 한 것 같다. 그렇다고 잃어버릴 것을 걱정해서 좋아하는 물건을 상자에 넣어 모실 수도 없다. 그러느니 한 번이라도 더 함께 외출하고, 한 번이라도 더 자랑하고, 한 번이라도 더 만지고 싶다. 잃어버린 물건들도 어딘가에서 나름대로 다음 순간을 맞이하고 있겠지. 아주 가끔이지만 잃어버렸던 물건들이 돌아오기도 하니까, 나는 계속 그런 순간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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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이 많아요.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세세히 기억나지 않을 뿐. 특히 엄마가 만들어 준 퀼트 동전 지갑을 수도 없이 잃어버렸어요. 고양이 얼굴 모양을 한 귀여운 지갑인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보통 대학생 때 멋진 지갑을 많이 들고 다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지갑이 편하기도 하고, 손에 쏙 들어와서 거기에 별의별 거 다 넣어서 다녔거든요. 현금, 교통카드, 체크카드, 이어폰, 립밤. 그 조그만 지갑에 뭘 참 많이도 넣어 다녔어요. 술 먹고 잃어버리고, 길 가다가 잃어버리고. 그때마다 속상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것 같은데. 제 고양이 지갑은 참 똑똑했어요. 어떻게든 주인을 찾아오더라고요. 알지 못했던 사람의 선의로 저의 지갑은 항상 제 품으로 돌아왔어요. 물론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지만요.
나이의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뀐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카드지갑도 잃어버리고, 우산 커버도 잃어버리고. 여전히 그래요. 그런데요. 진짜 진짜 신기하게 제가 잃어버린 물건은 언제고 다시 제 품에 돌아오더라고요. 무심코 길을 걷다가, ‘어! 저거 방금 잃어버린 내 카드 지갑이다! 엇? 저건 어제 잃어버린 내 우산 커버다!’ 하고 줍는 일이 빈번합니다. 아무래도 제 물건과 저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묶인 것이 분명해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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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 어느 날 밤 잃어버린 우산 커버를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발견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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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던 물건은 아니었지만,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아주 강렬한 기억이 있는데요. 대학생 때는 꾸미는 데 한창 신경을 쓸 때잖아요. 게다가 저는 학창 시절 내내 ‘깨끗하고 맑게’를 유지하던 피부가 대학생이 되고 정말 곧바로 다 뒤집어졌어요. 여드름을 가리는 데 온 신경이 곤두서있던 저는 화장품을 사는데 집착하곤 했죠.
그날도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화장품을 잔뜩 샀습니다. 그러고 신난 마음으로 카페에 들어섰죠. 주문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네, 화장품이 싹 사라지고 없었어요. 그때는 cctv를 뒤져 범인을 잡을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랬다고 한들, 대학생이 바글바글한 학교 앞 카페에서 찾을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도 없지만요.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노래방으로 가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을 불렀습니다. 웃겨 자지러지던 친구들의 표정이 여전히 잊히질 않네요…
_늉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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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4] 어린시절에는 쉬웠던 허세이자 선언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참에 마음먹고, 허세를 부려보죠. 10년 뒤의 나는 어디까지 자라 있을까요?
📋 근거조항
27~28P. 어린이의 허세는 진지하고 낙관적이다. 그래서 멋있다. 결정적으로 그 허세 때문에 하윤이가 옥스퍼드(또는 케임브리지)에 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바다 건너까지 유학을 가겠는가.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하나의 선언이다. '여기까지 자라겠다'고 하는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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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업으로 시작했던 뜨개 스토어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이야! 가족들도, 여러 지인들도 도움을 주지만 아무래도 제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본업과 병행을 하기에 벅찬 부분이 있네요.
그렇다고 본업을 놓자니, 이제 출판계를 떠나 4년. 좀 다른 ‘홍보의 맛’을 보기 시작했는데 지금 그만두기엔 아쉬움이 커요.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를 생각하면, 집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는 게 맞는 것 같지만… 지금 회사에서 받은 인정이나 커리어를 생각하면, 조금 더 병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해 보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네요.
_늉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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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만든 늉늉의 뜨개 스토어 웹사이트 (귀엽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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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크래프터라는 단어 아시나요? 본업을 유지하며 가능성을 탐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래요. 월급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퇴근 후 나만의 프로젝트를 키워가는 거죠.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냐고요? 사이드 크래프터, 그게 바로 저니까요. 저는 서른 즈음부터 서점에서 md 일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일하면서 배운 것들을 활용해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직장도 계속 다니고 있고요! 본업과 부업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죠. 제가 운영하는 책방은 작지만 단골손님이 많아요. 제가 읽어보고 별점 5점을 준 작품들만 엄선해서 큐레이션 하고 있는데, 손님들의 만족도가 꽤 높답니다. 믿고 읽는 슬슬 픽 책이랄까요. 책도 잘 팔려서 부수입이 월급보다 나아요. 어때요 저? 성공했죠?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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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5] 영원히 좋아지지 않을 것 같던 것이 좋아지기도 하고, 언제나 좋을 것만 같던 것들이 싫어지기도 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갑니다. 어렸을 때의 나였다면 상상할 수 없었을, 어른이 된 나의 새로운 모습이 있나요?
📋 근거조항
125~126P. 심지어 버섯은 어렸을 때 안 먹은 것을 만회하려는 사람처럼 탐욕스럽게 먹는다.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양송이버섯, 목이버섯을 가리지 않는다. 마트에 처음 보는 버섯이 있으면 조금 비싸도 사서 먹어 본다. 어린이 김소영에게 누군가 “나는 미래에서 왔고 너는 나중에 버섯을 모아 전골을 끓여 먹는 어른이 될 거야”라고 말해준다면 하루하루를 절망에 빠져 살겠지? 그 생각을 하면 사람의 식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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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치원생 늉늉은 ‘청국장’ 냄새를 맡으면 오빠 똥 냄새라며 소리를 질렀다지요. (오빠 미안) 어느덧 서른넷의 나이, 청국장은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2. 십자수, 바느질, 스킬자수… 손으로 사부작대는 거라면 뭐든지, 누군가의 ‘발’로 만든 것보다도 못한 솜씨를 가졌던 늉늉은 어느새 뜨개에 미친 뜨개 광인이 되었습니다.
3. 저는 정말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스파게티를 해주겠다며 친구를 집으로 데려간 중학생 늉늉이 면을 말 그대로 ‘까맣게’ 태웠다고 합니다. 그저 면만 삶았을 뿐이고, 토마토소스는 그대로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음식을 태운 기억이 많아 새까만 면 정도로는 임팩트가 없었을지도요… 지금은 파스타, 닭볶음탕, 오야코동, 토달볶, 카레 등등… 먹고 죽지 않을 정도의 음식은 즐겁게 만들곤 합니다.
4. 수업 시간에 몰래 책을 읽다 압수를 당하던 것이 수십, 수백 번… 그 어떤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좋아 문예창작학과를 희망하던 학생 늉늉은 죽었습니다(단호). 서른넷 늉늉에게는 책보다 좋은 것, 책보다 재미있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5. 사랑에 대차게 실패한 대학생 늉늉은 평생 혼자 살다가 실버타운에 들어가겠다며, 그야말로 피의 다짐을 했었죠. 놀랍게도 3개월 뒤 결혼을 합니다.
_늉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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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대의 슬슬은 체육 시간을 제일 싫어했어요. 운동, 그 숨차고 땀나는 걸 도대체 왜 하는 건지. 평생 운동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그런데, 어른이 되니 운동을 안 하고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요가, 필라테스는 당연히 해봤고, 요즘엔 현대무용과 발레를 배우고 있어요. 운동하기 싫어서 요리조리 도망 다니던 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살려고 아등바등 운동을 합니다.
2. 어릴 땐 가지를 정말 싫어했어요. 물컹한 식감도 싫고, 가지볶음에서 나는 특유의 향도 싫고, 생긴 것도 싫었어요. 그런데 가지를 굽거나, 튀기니까 너무 맛있더라고요? 요즘은 없어서 못 먹어요, 가지. (가지볶음은 여전히 싫어하긴 해요... 너무 못생겼어...)
3. 술 먹는 거! 전 부모님이 술을 마시지 않아요. 두 분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시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저도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20살 봄까지만 해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었는데, 그해 여름 즈음... 막걸리 맛에 푹 빠져 술에 입문했습니다. 이젠 뭐... 술 없인 못 살죠.
4. 어릴 땐 혼자 있는 걸 싫어했어요. 심심하고 외롭고 우울했어요, 혼자 있으면. 지금은 혼자 있고 있습니다. 격하게 혼자 있고 싶어요. 예전의 슬슬은 친구들과 어울려서 왁자지껄 떠들며 노는 걸 좋아했다면, 지금의 슬슬은 혼자 집에서 책 읽고 뜨개질하는 걸 좋아해요.
5. 아침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엄마가 아침밥을 항상 챙겨주셨어요. 한 번도 아침 식사를 거른 적이 없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침 식사 루틴은 와르르 무너졌어요. 아침밥 대신 수면을 선택했죠. 엄마가 아시면 참 슬퍼하시겠네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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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 필라테스를 4년 정도 했어요. 꽤 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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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6] 어른이 된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선생님이 있나요?
📋 근거조항
118~119P. 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어서 선생님들이 나를 오해했거나 아프게 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런 선생님들의 얼굴은 그저 뿌옇게만 남아 있다. 반대로 또렷이 기억나는 것도 있다. “소영이는 인사할 때 웃는 얼굴이어서 소영이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져”라고 하신 선생님의 웃는 얼굴,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밥은 꼭 먹고 다녀야 한다고 근엄한 얼굴로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다정한 눈동자, 우리 모둠에서 제일 냄새가 많이 나던 아이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도시락을 드시던 선생님의 모습, 전학생인 나를 숨이 막히도록 꽉 끌어안으며 “나는 새로운 아이가 너무 좋아”라고 환영해 주신 선생님의 목소리만은 어제의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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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자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데요. 학생들의 마음을 굉장히 잘 알아주는 선생님이셨어요. 수업 외의 시간에는 말 그대로 ‘친구 같은 선생님’이셨고, 수업 시간에는 ‘역사를 가장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분이셨지만, 그렇다고 수업 내용이 특별하게 재밌진 않았어요. 그럼에도 아이들이 선생님의 수업에 집중을 잘하고, 또 그만큼 성적도 잘 나오곤 했었습니다. 선생님이 수업을 정해진 수업 시간에 딱 반만 하셨거든요. 45분 중에 20~25분은 수업, 나머지는 노는 시간이었습니다. 단, 여기엔 조건이 있었어요. ‘수업을 하는 절반의 시간만큼은 절대 떠들거나 딴짓하지 않을 것. 한 명이라도 어기는 즉시, 45분 수업으로 돌아간다.’ 20분의 노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수업에 집중했던지. 절반의 시간만으로도 오히려 성적이 올랐으니, 저는 주효한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_늉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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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사회 학원을 다녔어요. 그곳에서 사회와 한국사를 배웠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둘리에 나오는 고길동 아저씨를 쏙 빼닮아서, 매일매일 놀렸던 기억이 나요. 까불까불 말괄량이에 예의도 없는(?) 저를 가르치느라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이 수업을 굉장히 재미있게 잘하셨어요. 사회 과목은 외울 게 많잖아요. 무작정 외우려고 하면 머리가 아플 여러 내용들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서 말씀해 주시니까, 이해가 너무 잘 되는 거예요. 머릿속에 수업 내용이 쏙쏙 들어오니까 성적도 좋았어요. 제 기억이 조작된 걸 수도 있지만, 그때 사회 시험을 치면 거의 100점을 맞았던 것 같아요. 수업료가 크게 비싸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인풋 대비 아웃풋이 훌륭했죠. 우리 고길동 선생님, 아직도 안동에서 열정적으로 수업하고 계시려나요? 갑자기 보고 싶네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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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당 백브리핑
_어린이라는 세계의 중요한 문장들, 함께 짚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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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의 문장
24, 28P. 어린이의 ‘부풀리기’에는 무시할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매력이 있다.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하나의 선언이다. ‘여기까지 자라겠다’고 하는 선언.
45~46P.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음만으로 되지 않으니 나도 보고 배우고 싶다. 좋은 친구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나 기웃거리는 요즘이다.
92P. 사람들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주는 활기차다. 서로 달라서 생기는 들쭉날쭉함이야말로 사무적으로 보일 만큼 안정적인 질서다. 그런 우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게 나는 안심이 된다. 우주가 우리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만큼 넓다는 사실도.
🔖 늉늉의 문장
20P.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시간의 흐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기다려 주는 순간에는 작은 보람이나 기쁨도 있다. 그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
32P. 나는 하윤이에게는 착하다는 말 대신 “어,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하고 답했다.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쓰기가 늘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에 세상이 거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더 큰 이유는 어린이들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두려워서다.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 사전에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건 너무 위계적인 표현 아닌가.
63P. 나는 마치 격언인 것처럼, 하준이의 말을 그대로 외웠다.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90P. 어린이의 개성은 그보다 복잡하게 만들어진다.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과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경험이 뒤섞인 존재다. 어른이 그렇듯이.
179P.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지 않는다. 다만 서툴러서 어린이의 사랑은 부모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하는지 모른다. 마치 손에 쥔 채 녹아 버린 초콜릿처럼.
197P.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209P. ‘노 키즈 존’이든 ‘노 배드 페어런츠 존’이든, 차별의 언어인 것은 마찬가지다. 쏘아보는 쪽이 어린이인가 부모(실제로는 엄마)인가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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