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1] 제3차 독서위원회 회의 결과 _ 피로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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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1]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 [안건 2] 노동과 여유, 활동과 사색의 균형점
[안건 3] 나를 이 세상에 머무르게 하는 '피로'💤 [안건 4] 사라져버린 패러다임❌ [안건 5] 내 삶을 지배하는 가치와 의미
[안건 6] 당신의 인정욕을 채워주는 사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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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분량에 속았습니다. 곱씹어야 이해가 되는 문장에, 2~3배 분량의 책보다 읽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 책. 비판을 위해 ‘활동’의 가치를 지나치게 낮추어 평가한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12년도에 바라본 현대사회(성과사회)의 문제점이 24년에 이른 지금에도 상당 부분 동의가 된다는 점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져요.
_늉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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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으니까 금방 읽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었다면 다시 내려 놓으세요. 한 페이지를 최소 세 번은 읽어야 문맥이 파악 가능합니다. 다른 책 열 권 읽는 것 보다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것 같네요. 독서 입문자나 책태기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비추. 나처럼 지적 허영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강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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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1]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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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거조항
30P. 멀티태스킹이라는 시간 및 주의 관리 기법은 문명의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은 후기 근대의 노동 및 정보사회를 사는 인간만이 갖추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퇴화라고 할 수 있다. 멀티태스킹은 수렵자유구역의 동물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습성이다. 야생에서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법이 멀티태스킹인 것이다.
깊은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멀티태스킹은 ‘능력’ 아니라 '퇴화'라는 말에 동의했습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걸 우리는 능력이라고 여겨요. 저도 업무를 하면서 여러 일을 동시에 쳐낼 때 때로는 뿌듯함을 느끼는데요. 이 구절을 읽고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업무를 해내기 위해 일을 ‘쳐내는’ 것이 과연 발전적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더라고요.
깊은 고민 없이,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성장에는 언젠가 무너짐이 찾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섬뜩해졌습니다.
_늉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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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거조항
28P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우울증. 울적한 기분이 나아지지 않고,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지 않는 질환이죠. 요즘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만큼 나쁘지 않지만, 여전히 우울증은 극복 대상으로 여겨져요. 그래서 우울증은 당연히 부정성의 과잉으로 인해 나타나는 질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단락을 읽고 ‘아차!’ 싶더라고요.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하잖아요. “나는 뭐든 할 수 있다.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잘할 수 있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걸 왜 몰랐을까요. 생각만큼 잘 해내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무력감, 혹은 허탈함. 이런 감정을 떠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여태까지 ‘긍정’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마냥 좋게만 생각했었는데요. 이 단락 덕분에 제 편협한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에요.
_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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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2] 저자는 니체의 말들을 적극 인용하며 사색적인 삶, 관조적인 삶, 평온하고 평정한 삶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의견에도 일부 동의하는 바이지만, 저는 '성과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노동과 활동에 긍정적인 가치를 너무 낮추어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노동과 여유, 활동과 사색의 균형점은 어디일까요?
📋 근거조항
35P.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성격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112P. 니체라면 활동과잉의 인간을 역겨워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한 영혼"은 "평정"을 유지하고 "천천히 움직이"며, "지나친 활발함에 대해 거부감"을 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거친 노동을 좋아하고 빠른 자, 새로운 자, 낯선 자에게 마음이 가는 모든 이들아. 너희는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너희의 부지런함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려는 의지이며 도피다. 너희가 삶을 더 믿는다면 순간에 몸을 던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내실이 부족해서 기다리지도 못한다-심지어 게으름을 부리지도 못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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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에도, 번아웃에도 도달하지 않는 적당한 지점. 그 지점을 찾기 위해선 ‘멈출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여유롭고 사색하는 삶이 계속되면 무기력에 빠질 거예요. 활동을 쉼 없이 하다 보면 번아웃에 빠질 거고요. 그렇기에 '멈춤'이 균형점을 찾아주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이렇게 생각은 했지만, 저도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몰라요. 답을 안다면… 우리 모두는 여느 철학자들이 말하는 그런 완벽한 삶을 살고 있겠죠? 그래도 답을 찾기 못했기에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_늉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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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늉늉 / 제 노동의 '멈춤'이 되어주는 취미. 실도 잘 못 잡던 제가 어느덧...!
완벽한 삶이 아니기에, 우리는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일지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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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여유. 활동과 사색.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여유와 사색보단 노동과 활동에 치중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해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는 이제 습관처럼 익숙한 문장이 되었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해야 할 일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요. 아마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안건 1]에서도 말했듯,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습니다. 두 번 열심히 일했으면 한 번쯤 쉬어가는 것. 평일 내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활동을 했다면, 주말 이틀 간은 몸과 마음을 편안한 곳에 두고 사색하는 것. 이게 우리가 노동과 여유, 활동과 사색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 방법 아닐까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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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3] 한트케는 성과사회의 “고독한, 세계를 없애버리는 피로”에 대한 대립자로 “세계를 신뢰하는 피로"를 내세웁니다. 저는 한트케가 말하는 이 피로가 ‘나를 이 세상에 머무르게 하는 느낌을 주는, 행복한 피로’라고 생각했어요. 슬슬에게는 어떤 피로가 나를 이 세상에 머무르게 한다는 느낌을 주나요?
📋 근거조항
68P. 자아 피로가 고독한 피로이고 세계가 없는, 세계를 없애버리는 피로라면, 한트케의 피로는 "세계를 신뢰하는 피로"이다. 그것은 자아를 "개방"하여 세계가 그 속에 새어 들어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 그것은 고독한 피로 속에서 완전히 파괴된 "이원성"을 복구한다. 우리는 보고 또 보여진다. 우리는 만지고 또 만져진다. "접근을 허락하는 피로, 만져지고 또 스스로 만질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피로." 그런 피로를 통해 비로소 머물러 있는 것, 한 곳에서의 체류가 가능해진다. 자아가 줄어들고 이는 세계의 증대로 나타난다. "피로는 나의 친구였다. 나는 돌아와 있었다. 이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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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라이밍 운동을 마친 후. 온몸의 뻐근함을 동반하는 피로...! 문제를 잘 풀고 온 날은 피로도, 기쁨도 배로 찾아온답니다.
2. 독서모임을 마친 후. 2시간 정도의 토론이 끝나고 나면 정신적, 신체적 피로가 동시에 찾아와요… 그래도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는 뿌듯함이 더 큰 순간!
3.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난 후.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그럼에도 만나면 행복한 사람들이 있죠.
4. 뜨개질, 요리를 마친 후. 내 손으로 만들어낸 소품, 요리를 마주했을 때, 그때의 기쁨이란!
_늉늉 |
1. 이책이당 원고를 탈고했을 때. 교정·교열을 보고 나면 눈이 피로해요. 하지만 곧 당원 여러분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피로를 덮어버리죠.
2.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나 낯선 동네를 산책할 때. 길눈이 심각하게 많이 어두운 저는 길을 많이 잃곤 하는데요. 두 다리는 무겁지만, 새로운 풍경을 많이 접할 수 있어 행복해요.
3. 내 손 끝에서 탄생한 뜨개, 마크라메 소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때. 부족한 솜씨이지만, 선물 받은 사람이 기뻐하며 자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좋아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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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늉늉 / 지구력 4단계 코스 완등!
2주나 걸렸던 만큼 기쁨 2배! 피로도... 2배! |
ⓒ슬슬의 동료 / 동료에게 직접 만든 마크라메
파우치를 선물하고 받은 귀염뽀짝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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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4] ‘패러다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안에 속한 인간도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하고 있죠. 이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영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했지만, 지금은 사라져 버린 패러다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 근거조항
13P. 어떤 패러다임 자체가 반성의 대상으로 부상한다는 것은 그 패러다임이 몰락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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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꼬마 슬슬이던 시절, 양념치킨 한 마리를 먹기 위해선 동네 둘리치킨에 전화 주문을 해야 했어요. 10여 년 전인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전화 주문이 당연했습니다. 급식 메뉴가 마음에 안 들면 친구들과 함께 학교 근처에 있는 길거리 분식집에 전화를 걸었던 게 생각나네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무언가 먹고 싶으면 배달앱을 열어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결제까지 배달앱에서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면서 굳이 전화 주문을 하지 않게 되었네요. 택시를 탈 때도요! 예전엔 길거리에서 ‘빈차’라고 쓰여있는 택시를 찾아 손짓으로 불렀잖아요. 요즘은 어떤가요? 여러 앱을 통해 이동수단을 간편하게 부르고, 결제까지 한방에 하고 있죠. 이 모든 게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생긴 변화예요. 스마트폰이 보급화되면서 응용 소프트웨어인 앱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미처 알아차릴 틈도 없이 삶의 모양이 바뀐 게 참 신기해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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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전환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우리는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와 학원에 가고, 일을 하기 위해 회사에 가고,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마트나 백화점에 가고, 돈을 찾고 보내기 위해 은행에 갔습니다. 오프라인, 다시 말해 물리적인 공간에서 모든 일을 해결했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대부분의 일을 온라인상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리의 사고도 이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습니다. 메신저를 통해 동료와 대화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고, 공적인 업무 외의 사적인 시간은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으로 보장받길 원해요. 그 변화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저도 이런 변화가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다만 전환된 패러다임이 저자가 말하는 성과사회를 더 부추기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성과사회가 패러다임이 빠르게 전환되게끔 영향을 주는 걸지도 모르고요.
언젠가 지금의 패러다임도 또다시 변화하겠죠? 그저 변화에 잘 발맞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_늉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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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5] 피로사회에서는 근대에 이르러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줄 이야기가 붕괴되었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가치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나요? 내 삶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이야기 나눠요.
📋 근거조항
42P. 세계는 전반적으로 탈서사화 되었으며 이로 인해 허무의 감정은 더욱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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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 나무들 틈으로 들어오는 반짝이는 햇살을 보면서 사색 중...이 아니라 산책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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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새로움’이에요. 저에겐 ‘새로움=엔도르핀’입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단조롭고 납작한 일상에 입체감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주 먹는 음식, 늘 하는 데이트, 즐겨 읽는 장르의 책, 매일 하는 일은 뒤로 하고, 새로운 것을 찾고 도전합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나 음료를 먹어보고,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취미 찍먹을 하고, 가보지 않았던 곳을 여행해요. 그리고, 새로운 것을 함으로써 평범하고 단조로운, 다시 말해 나에게 익숙한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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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가치 리스트’, ‘나의 가치 찾기 릴레이’라는 글들이 많더라고요. 리스트에 있는 여러 단어 중에 내가 가장 중시하는 다섯 가지를 뽑아보는 건데요. 저는 안정, 평화, 사랑, 건강, 안전을 선택했어요. 제 결과에 저도 놀랐습니다. 저는 자유, 재미, 모험, 도전 등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삶의 가치가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이제는 평화로운 삶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 봅니다.
_늉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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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6] 수면욕과 식욕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생리적 욕구라면, 인정욕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심리적 욕구가 아닐까 싶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욕구가 있습니다. 칭찬받고 싶고, 예쁨 받고 싶은 건 인간이라면 누구가 가지고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죠. 당신 곁엔 당신의 인정욕을 채워주는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을 소개해 주세요.
📋 근거조항
86P. 타자와의 관계가 사라지면서 보상의 위기가 찾아온다. 인정으로서의 보상은 타자 또는 제3자라는 심급을 전제한다. 스스로를 보상하거나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보상구조에 이상이 생기면서 성과주체는 점점 더 많은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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숑!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 질문은, 숑을 생각하면서 던졌어요. 숑은 늘 저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멋진 언니예요. 살면서 채워야 할 인정 욕구를 숑이 모두 채워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쁘다. 잘했다. 멋지다. 대단하다. 배울 점이 많다. 저는 지금도 숑이 저에게 보내는 응원을 식량 삼아 세상이라는 정글을 탐험 중입니다.
전 직장에서 일을 할 때 1인분을 해내지 못하면 우울해하는 사람이에요. 인정욕구도 어마무시하게 강하고요. 이런 제가 어떤 일을 해냈을 때, 숑은 저보다 더 기뻐하면서 멋지다고, 장하다고 격려를 해줘요. 연차가 한참 낮은 저에게 스스럼없이 업무 조언을 구하고, 감사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쭈굴쭈굴해지지 않도록 위로를 해줘요. 내가 다음에 똑같은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아쉽지만 지금은 숑과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숑에게 연락이 왔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가 함께 일했을 때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얼마나 잘 해냈는지 이제야 알겠다고, 지금에서야 알아줘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괜히 마음이 찡해지는 거 있죠. 갑자기 숑이 보고 싶네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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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 나에게 늘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언니, 숑! (feat. 숑이 사 준 고추냉이 맛 꽃게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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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보고서에서인가요? 제가 의외로 인복이 많은 타입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저는 제 주변에 인정욕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슬슬도 그중에 하나고요. 저는 특히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저의 인정욕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업무적으로도 그렇지만, 업무 외적인 것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덕분에 회사를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고 있어요. 한 명 한 명, 소개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렇다면 뉴스레터가 너무 길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들 중 한 명이 저에게 한 말을 살포시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늉늉 님은 저희 모임의 최대 아웃풋이에요!”
_늉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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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당 백브리핑
_피로사회의 중요한 문장들, 함께 짚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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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늉늉의 문장
52P. 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 힘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힘으로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니체의 말을 빌린다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러한 부정적 힘은 단순한 무력함, 무언가를 할 능력의 부재와는 다른 것이다. 무력함은 단순히 긍정적인 힘의 대립항일 뿐이다. 무력함은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결국 그 무언가에 대한 종속이며 그 점에서 긍정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부정적 힘은 무언가에 종속되어 있는 이런 긍정성을 넘어선다. 그것은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 부정적 힘 없이 오직 무언가를 지각할 수 있는 긍정적 힘만 있다면 우리의 지각은 밀려드는 모든 자극과 충동에 무기력하게 내맡겨진 처지가 될 것이고, 거기서 어떤 "정신성"도 생겨날 수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활동과잉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무언가 생각할 힘밖에 없다면 사유는 일련의 무한한 대상들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기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긍정적 힘, 긍정성의 과잉은 오직 계속 생각해나가기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94P. 탈진과 우울 상태에 빠진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의해 소모되어버리는 셈이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탈진해버린다. 그는 자신에게서 걸어 나와 바깥에 머물며 타자와 세계에 자신을 맡길 줄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자기 속으로 이를 악물 따름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남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속이 텅 비어버린 공허한 자아뿐이다. 주체는 점점 더 빨리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마모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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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의 문장
38P. 기적은 인간의 탄생 자체, 그리고 인간이 그러한 탄생의 힘을 바탕으로 행동하여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에 있다.
101P. 사회의 긍정화가 폭력을 철폐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은 분쟁이나 갈등의 부정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의의 긍정성도 폭력의 원천이 된다. (•••) 성과 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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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당은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두 귀를 활짝 열고 있습니다.
당원 여러분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나날이 발전하는 이책이당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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