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9] 제6차 독서위원회 회의 결과 _ 아무튼 당근마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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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1] 나에게 위안을 주는 물건✨ [안건 2] 존재를 깜빡 잊고 지낸 물건💭
[안건 3] 마음을 촉촉하게 해 주는 시 한 편💌 [안건 4] 삶에 비움의 시간이 있나요 [안건 5] 오롯이 나를 위한 행위
[안건 6] 나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말과 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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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왜 『아무튼 당근마켓』인지 알려주실 분 구합니다. 당근마켓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여럿 있긴 해요.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당근마켓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이기엔 조금, 아니 많이 애매합니다. 다른 제목을 제안해야 한다면『아무튼 세컨핸드』가 어떨까요. 그게 아무튼 시리즈의 슬로건인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와 더 잘 어울릴 텐데 말이죠.
그럼에도, 시인이 쓴 에세이는 역시 믿고 읽을 만하네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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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 이야기들을 '당근마켓'과 연결해야 했을까? 아무튼 그래서 '마켓'은 모르겠는 이야기. 그렇지만 '온도'는 느껴졌던 이야기. '물건도, 사람도, 삶도 잊히고 싶지 않다. 과거가 되고 싶지 않다. 기억되고 싶고, 현재이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에게 찾아온 물건도, 사람도, 삶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_늉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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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1] 저는 6평 남짓 되는 작은 방에 살고 있어요. 비좁은 공간이지만 옷, 책, 카메라, 장난감, 식물 등 수많은 물건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과 함께 복작복작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우린 모두 많은 물건에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는데요. 그중 당신에게 즉각적인 위안을 주는 물건에 대해 이야기 나눠요.
📋 근거조항
12P. 물건은 그런 힘이 있다. 유효기간 있는 처방약처럼 즉각적인 위안을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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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대표 상큼이, 초록이들을 소개할게요. 전 제 한 몸 돌보기도 벅찬 사람이에요. 다른 생명체와 함께하는 삶을 감히 꿈꿔 본 적 없습니다. 그럴 체력도, 다정함도, 책임감도 부족하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작은 화분 하나를 선물 받았어요. 볕이 잘 드는 자리에 두고, 가끔 물 좀 줬을 뿐인데 아가 새싹이 뽁-! 하고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초록이들을 집에 하나둘씩 들이기 시작했어요.
사실, 전 게으른 식집사예요. 초록이들을 방치하기 일쑤지요. 목이 말라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다가, ‘아, 우리 집 초록이들도 물 안 마신 지 오래됐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그제야 물을 줘요. 예쁜 말도 잘 안 해주고요. 밤낮으로 아주 잠깐씩만 스치듯 봅니다. 별 거 안 하는데도 어느 날 보면 알아서 쑥쑥 자라 있는 초록이들 너무 기특하지 않나요? 조그마한 화분 안에서 넘치는 생명력을 마구마구 뿜어내는 게 놀랍습니다. 싱그러운 풀 냄새와 진한 흙냄새는 또 얼마나 향긋하게요.
올봄이 되기 전 우리 집에 온 몬스테라는 넓은 집으로 이사하게 해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제가 봐도 화분이 많이 비좁아 보이네요. 몹쓸 게으름뱅이 주인을 만나서 초록이들이 고생이 참 많아요. 오늘은 몬스테라에게 어울리는 커다란 화분 하나를 사야겠어요. 아! 물도 주고요.
_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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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 게으른 식집사와 함께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싱그러운 초록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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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필요해서 응모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놀랍게도 수고비 없이 하겠다는 지원자도 있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는 그저 노동인 퍼즐 맞추기가 어째서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큰 즐거움일까.'
저에게도 퍼즐은 삶에서 아주 큰 즐거움이에요. 모든 종류의 퍼즐을 좋아하지만 지그소(직소) 퍼즐을 좋아한 지는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시작은 아버지가 사 온 야광 퍼즐이었어요. 오빠와 제 방에 하나씩 걸어주겠다며, 뭐든 했다 하면 본격적으로 하는 아버지는 액자까지 미리 준비하시고는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땐 몰랐던 거죠. 1000피스를 맞추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걸요. 며칠째 거실 한구석에 펼쳐져 있는 퍼즐에 어머니의 잔소리 폭격이 시작될 즈음, 제가 기웃기웃 가서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재능은 저한테 있더라고요.
야광 퍼즐은 결국 벽에 걸리지 못한 채 몇 년 만에 저희 집에서 사라졌지만, 그때의 즐거운 기억은 제게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도 제게 잔소리를 하시곤 해요. 저는 퍼즐을 맞췄다 부쉈다, 다시 또 맞추기를 반복하는데요. 왜 그런 '짓'을 하냐는 거죠. 쓸데없이 자리를 차지한다며,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 그 야광 퍼즐 액자를 아버지는 잊으셨나 봅니다.
재미 반,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반. 저는 대개 하루를 넘기지 않고 1000피스를 완성해요. 하루 안에 딱 완성하는 그 즐거움. 그것만큼 쾌감을 주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이제는 더 많은 취미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마음에 큰 위안이 필요할 때는 퍼즐을 찾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퍼즐을 맞추고 싶어 지네요! 오늘은 제게 퍼즐을 처방해야겠습니다.
_늉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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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늉늉 / 다 꺼내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불호령을 들을까 무서웠습니다. 보니까 또 더 사고 싶ㅇ... #등짝맞는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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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2] 대청소를 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아, 맞다! 나한테 이런 게 있었지!” 자매품으로는 “나한테 이런 물건이 있었나?”가 있어요. 내 곁에 온 지 오래되었지만 깜빡 잊고 있었던 물건이 있나요? 왜 그 물건의 존재를 잊었나요?
📋 근거조항
65~66P. 대부분의 물건은 망가지거나 구석에 처박히거나 낡아 버려진다. 당장 버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디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은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는 상태다. (…) 존재가 망각되는 것은 필요의 감각을 잃는 것. 오래된 물건 대부분은 그렇게 시간에 휩쓸려 가고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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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별명 부자예요. 종이 인형, 최와와, 바둑이, 최이사 등 수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올라프입니다. <겨울왕국 2>가 제 인생 애니메이션이고, 최애 캐릭터가 올라프거든요. 제 별명이 왜 올라프냐고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치아 교정을 하기 전인 이십 대 초반까지 입이 조금 튀어나와 있었어요. 둘째, 제 두 눈은 올라프처럼 땡그래요. 셋째, 제 DNA에는 올라프의 엉뚱함과 똘끼가 가득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되었을까요? 아차차!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십 년 전 가깝게 지내던 친구에게 올라프 담요를 선물 받았어요. 기뻤죠.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어서 담요 하나 장만하려고 했거든요. 게다가 좋아하는 올라프까지 담요 안에 가득하니, 금상첨화 아니겠어요? 하지만 그 친구와 사이가 멀어지면서 올라프 담요는 장롱 깊숙한 곳에 봉인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8년 넘게 그 담요의 존재를 잊었어요. 작년 가을, 맹장 수술을 받고 본가에서 요양하던 중이었어요. 옷장 안의 리빙박스가 눈길을 사로잡더군요. 상자를 열었더니, 가장 위에 올라프 담요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일까요. 그 담요를 봐도 덤덤하더라고요. 때마침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고, 저에겐 담요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 귀여운 아이를 다시 사용하기로 결심했어요. 이젠 올라프 담요가 잊고 사는 물건에서 애착물건이 되었어요. 겨울은 물론이고 여름에도요. 회사에서의 여름은 겨울만큼이나 추워서 푸욱- 뒤집어쓸 담요가 필요하거든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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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 사무실에 도착하면 와글와글 올라프들이 가장 먼저 반겨줍니다. (feat. 냉방병 예방 필수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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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맥시멀리스트의 삶을 사는 저로선, 잊고 사는 물건이 너무 많아 한 가지만 꼽기가 쉽지 않네요. 그런데 제가 어떤 물건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그 물건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물건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물건의 존재를 완전히 잊지 않았다는 뜻이고요."
독서모임에서 슬슬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불현듯 생각이 났던 바로 그 물건! '마크라메 실'입니다. 저는 뜨개를 좋아하는데요. '실'을 다루는 비슷한 공예이니, 마크라메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지나쳤던 거죠. 키링을 만들고 싶었는데, 몇 번을 시도해도 예쁘게 잘되지 않더라고요. '잘하는 걸 해서 자존감을 찾고 돌아오자!' 그렇게 잠시만 뜨개로 피난을 떠났다가 금방 돌아가려고 했는데... 제 기억 속에서 잊혔지 뭐예요. 방금 생각이 나기 전까지는요.
못할수록 연습을 더 해야 하는 건데 까맣게 잊고 살았다니... 반성합니다. 조만간 마크라메 재료를 눈에 잘 띄는 곳에 꺼내놓아야겠어요. 눈에 계속 거슬리면, 언젠가는 마크라메에 다시 도전하겠죠?
_늉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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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3] 여러분은 시를 좋아하나요? 저에게 시는 그저 대학 입시를 위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학문에 불과했어요. 십여 년 전 문학 참고서에 나온 시를 외우다시피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한동안은 시를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좋은 시 한 편이 우리의 가난한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요? 메말라버린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시 한 편을 함께 나눠요.
📋 근거조항
33P. 시는 읽힐 때 확장된다. 독자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주소로 간다. 독자는 만난 적 없는 시인 때문에 어딘가 낯설어진다. 같은 시가 자신이 통과한 타인의 수만큼 다시 태어난다.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팽창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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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두 알, 박노해
산길에서 주워든 도토리 두 알
한 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나는 도토리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
내가 더 크고 더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고 윤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
울지 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여러분은 도토리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나요, 아니면 참나무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나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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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 공원으로 산책 나갔다가 주운 도토리 두 알. 저도 있는 힘껏 숲속으로 던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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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이병률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이다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제 삶이 어떻든, 그 어떤 순간에도 '잘 살아내고 있다'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은 시입니다. _늉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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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늉늉의 지인 / 모든 풍경이, 모든 순간이 찬란했던 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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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4] 대부분의 사람들이 채움의 시간은 많이 가지려 노력하지만, 비움의 시간을 갖는 데는 소홀한 것 같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 근거조항
28P. 창작 의뢰가 많아질수록 타인의 요구와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건강에 좋은 음식, 운동, 지속적인 독서와 배움, 활발한 사회 활동 등 작가 생활을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 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다. 비워야 또 채울 수 있다. 몸과 마음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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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드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드라마, 예능과 함께 하는 저이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없습니다'. 최근에는 일도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취미, 운동도 많아져서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친구들은 제 삶을 보며 '갓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저는 제 삶이 바쁜 것에 비해 '알찬' 삶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바쁘게 움직이긴 하지만 언제나 그 끝엔 허무함이 몰려온달까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즐기고, 그 시간을 사랑했던 저이기에 더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 자체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과 맞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하고 싶은 것도, 조급함도, 조금은 내려놓고 비움의 시간을 가져봐야겠어요. 제 삶을 건강한 시간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요. '비워야 또 채울 수 있다'는 말도 있잖아요.
_늉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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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제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을 거예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시간도 아까워서 다른 일을 동시에 하는 저에게 비움의 시간이라니요. 전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음악을 듣고 있는 걸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도대체... 뭘까요?
이른 새벽 직장으로 부랴부랴 달려가 열심히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덧 어두컴컴한 밤이에요.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저녁 시간은 길어 봐야 세네 시간 정도죠. 요즘 재미있다는 드라마나 예능도 보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오디오북도 듣고 싶고, 뜨개질도 하고 싶고, 레고도 맞추고 싶고, 친구와 맛난 것 먹으면서 떠들고도 싶은데. 이 모든 걸 다 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그래서 티브이를 보면서 뜨개질을 하고, 산책을 하면서 오디오북을 듣고, 레고를 맞추면서 친구와 통화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아주 약간의" 시간을 알뜰살뜰하게 사용해요.
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사람이라, 앞으로도 비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 하핳.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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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합시다. 이것은 뉴스레터 발행 전까지, 날을 잡아 최소 30분 이상 그런 시간을 가져보고 감상을 뉴스레터에 남겨보도록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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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말하는 '비움의 시간'이 이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봤어요. 명상을 하려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도 잠시, 현생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명상이 쉽지 않더라고요.
생각의 생각 끝에 너무나도 피곤해져서 '이 정도면 30분은 무조건 넘겼다' 하고 스톱워치를 봤는데 고작 17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스톱워치를 킨 것부터 잘못이었을까요.) 저에게 비움은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_늉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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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실패한 걸까요, 성공한 걸까요? 실패한 것 같기도 하고...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 상당히 애매합니다. 저는 비움의 시간을 가진 과정을 공유할 테니, 판단은 여러분이 해 주세요.
1. "30분쯤이야.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지. 할 수 있다 슬슬!"이라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2. 스톱 워치를 켜고, 30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3. 좀이 쑤셔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4. 이내... 잠이 들었다.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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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5] 오로지 나를 위해 하고 있는 행위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떤 경험들을 선물하고 있나요?
📋 근거조항
33P. 시는 나를 위해 시작한 몇 안 되는 행위다. 일일이 설명 안 해도 성립되는 세계를 갖고 싶었다. 이민자로 지내는 동안 언어 앞에서 자꾸 실패하는 기분이었다. 발음되지 않는 것, 들어도 소리 이상의 의미로 들리지 않는 것들 사이로 매일, 찢어진 낙하산처럼 떨어졌다. 그럴수록 모국어와 타국어 사이 틈의 말을 찾아서, 나만 아는 방법으로, 세계를 다르게 경험하고 기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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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를 몰랐던 내 삶이 어땠더라?' 이제는 상상이 잘 안 가요. 뜨개는 그야말로 제 인생의 디폴트 값이 되어버렸습니다.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된 지 얼마 안 됐던 '뜨린이' 시절에는 제가 여러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너무 기뻐서 여러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먼저 나서서 가방이나 소품을 떠주겠다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죠. 그런데 '숙제'가 생기니 재미있지 않더라고요. 오롯한 나의 기쁨, 나의 평안을 위한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뜨개는 저에게 오히려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어요.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죠. 지금은 무언가를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니, 이것도 떴다가 저것도 떴다가, 정말 제멋대로 뜹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조금은 강박을 갖는 게 좋을지도'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오로지 나를 위해 하고 있는 행위', '나 자신에게 선물하는 경험'. 말은 거창하지만 별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작은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고요. 타인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것도 당연히 괜찮아요. 제가 뜨개를 왜 좋아하는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뜨개는 저에게 행복을 안겨줍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무언가를 꼭 찾으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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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늉늉 / 용도가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 주세요. 이 아이들은 귀여운 것만으로 제 몫을 다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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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해요. 폭신폭신한 침대에 누워 뒹구르르 구를 때의 행복, 여러분도 아시죠? 보다 편안하게 뒤척이기 위해선, 내 몸에 딱 맞는 홈웨어를 입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신상 잠옷을 구매해요. 올여름에도 벌써 두 벌의 잠옷을 샀답니다. 저는 보통 꽃무늬와 레이스가 존재감을 발휘하는 잠옷을 골라요. 공주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도 집에서 낡고 닳은 옷이나 트레이닝복을 입고 생활했었어요. 밖에 도저히 입고 나갈 수 없는, 그런 옷이었죠.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재택근무를 했었는데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히 길다 보니, 거울 속 후줄근하고 꾀죄죄한 내 모습이 눈에 자주 띄는 거예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고심 끝에 귀여운 레이스가 달린 빨강 체크무늬 잠옷을 사 입었습니다. 그게 제 잠옷 사랑의 시작이에요. 집에서 예쁜 잠옷을 입고 생활하니까 기분도 괜히 산뜻하고,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한다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혹시 여러분도 끝내주는 침대 라이프를 위해 예쁜 잠옷 하나 장만하고 싶다면 연락 주세요. 잠옷 척척박사, 슬슬이 편한 잠옷 고르는 꿀팁, 그리고 예쁜 잠옷 싸게 사는 법에 대해서 공유해 드릴게요.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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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 이번 생일에 저를 위한 선물로 예쁜 잠옷을 한 벌 샀습니다. 잘 어울리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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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6]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말과 태도에 대해 고민해 보아요. 그중에서, 이것만큼은 꼭 바꾸고 싶다는 게 있나요?
📋 근거조항
50P. 이름을 모르고 만났지만 어떤 정체성은 들킬 수밖에 없다. 말과 태도는 그 사람의 지문 같아서 잘 감춰지지 않는다. 다행스럽고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는 건,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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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 업무 피드백을 받은 직장 동료가 이런 말을 했어요. 다른 사람을 통해 피드백을 받았지만, 자료를 보자마자 늉늉 님이 준 피드백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다고요. 그리 길지 않은 피드백이었던지라, 어떻게 저라는 것을 알았는지 궁금했습니다.
동료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늉늉 님의 피드백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잔뜩 붙인 사족' 때문에 제가 준 피드백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요. 그 말을 듣고 무척 민망했어요. 뉴스레터에서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글을 써도 '구구절절형'이 되는 저라, 그것이 업무에도 반영이 되었다는 게 부끄러웠거든요.
하지만 동료가 '어느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울까, 자기 입장에서 오래 고민하며 붙인 사족이 웃기기도 하고 다정하기도 해서, 즐겁게 수정사항을 반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족이 많은 제 말과 행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저의 사족을 다정함으로 받아들여준 동료 덕분에, 저의 말과 행동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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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장점은, 선배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낸다는 거예요. 저의 단점도 선배들과 (심하게) 스스럼없이 잘 지낸다는 거고요. 저는 평소에 선배들을 대할 때 애교가 많아요. 장난도 심하고, 까불기도 잘 까불고요. 그리고 전 선배들을 별명으로 부릅니다. 아마 이 글을 보는 선배들 중 몇몇은 당신의 별명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늉늉도 제가 별명으로 부르는 선배 중 하나랍니다.
이런 저를 버릇없고,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이해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전 싸가지 없고, 건방지거든요. 모든 업계가 그렇겠지만, 출판업계는 소문과 평판이 유난히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기 위해선 제가 가진 이런 특성을 버려야 했죠. 그래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배들에겐 말과 행동을 조심하려고 노력했고, 세상 깍듯하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한 선배가 저한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슬슬이 깍듯하게 대하면 기분 나빠.” 이 말을 들었을 때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 선배는 제가 까불고, 장난치고, 별명 부르는 게 선배들과 잘 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였다는 걸 알았던 거죠. 나 원 참! 저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지! 지금은 절충안을 찾았습니다. 선배들의 특성과 회사의 분위기를 고려해서 까불지, 예의를 차릴지 결정해요. 이렇게 또, 눈치만 늘어갑니다.
_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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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당 백브리핑
_아무튼 당근마켓의 중요한 문장들, 함께 짚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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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의 문장
15P. 당신도 어딘가는 조금 이상하다. 세상에 더한 강박은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강박은 없다. 그러니 조금씩 이상한 서로를 포용하며 살아야지 어쩌겠나.
36P. 버려질 위기에 처한 물건들 또한 한 번 더 기회를 얻고 중고 시장에 서 있다. 재고되기 위해. 거기서 마지막으로 새로워질 기회를 얻는다. 모든 미물은 새로워지고 싶다. 나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소유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온 바로 그 물건일 수 있다. 꼭 팔아야 하는 사정과 마침 그걸 찾던 손이 만날 수도 있다. 고맙잖나.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감각은. 비슷하게 간절한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103P. 이야기 또한 입에서 시작된다. 입을 떠난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통과하며 새로워지고 생명을 얻거나 시든다. 이야기의 속도와 호흡, 동원되는 단어, 이야기가 멈추는 자리. 이야기 안에서는 우리를 들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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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늉늉의 문장
18P. 경험과 시간이 제한된 세계에서 물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매개가 된다. 엎질러진 시절을 다시 통과하게 되고 먼 타인과 나의 생활이 포개어진다. 아주 작은 물건을 손에 쥐면서.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애호의 역사를 나누며 유대감이 시작되기도 한다. 여러 공동체가 그런 방식으로 태어났다. 어쩌면 다른 나라에서 출발했을 전통 같은 데까지 함게 가면서. 재화 가치에 관계없이 유효한 이야기다.
32P. 자신의 세계를 움직여 먼 곳까지 와준 한 사람 한 사람을 환대하는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시장의 수요보다 백 배만큼 내어줄 준비가 된 시인이. 실로 그는 웃으며 낭독회를 잘했을 것이다. 그것은 시장이 기억하지 않을 공급방식이었다.
63P. 맞닥뜨렸지만 갖지 못한 장면의 목록은 그렇게 하나둘 늘어간다. 놓친 것에 너무 절망하지 않는 법을 사진가는 배우게 된다. 장면은 또 올 것이다. 물론 똑같은 장면은 오지 않는다.
66P. 하지만 같은 사진을 보고도 다 다른 사건으로 기억하기도 하므로 '사실'은 그것을 읽는 주체에 따라 변한다. 시대에 따라서도 변한다. 그러니까 사진이 붙잡을 수 있는 건 시간의 껍질 정도에 불과할 거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사람들이 시간의 표피라도 가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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